먼 길을 돌아 엉덩이 모양에 맞게 푹 꺼진 의자에 앉아 먼지가 수북이 쌓인 노트북 뚜껑을 연다.
어릴적 내 꿈은 없었다.
아니, 돌이켜보면 남이 ‘명사’로 정해준 껍데기 뿐인 꿈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허울뿐인 꿈을 가진 체 허공에 노를 젓 듯이 학창시절을 보냈다.
시간이 흘러 수능을 보고나니 걱정이 됐다.
좋은 대학교를 가려고 공부를 했지, 학과를 골라야 하는 것을 깜박하고 만 것이다.
뒤늦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의 삶을 면밀히 바라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모두 각자 분야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고 대단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중 개발자가 내 눈에, 아니 내 마음에 들어왔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세상에 편리함, 유익함을 선사한다’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새로운 세상을 마치 신처럼 창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서울 모 대학의 컴퓨터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에 입학하고 첫 수업을 들었다.
C언어를 공부하고 프로젝트를 하는 수업이었다.
고작해야 까만 프롬프트 창에 피라미드를 만들고 연산이나 하는 간단한 코딩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게 왜 그럽게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어영부영 학기 말이 되었다.
팀단위로 프로젝트를 만드는 중대한 과업이 있었다.
내가 무엇을 만들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Tony’s Adventure라는 허접한 제목만 기억난다)
다만, 다른 팀의 게임은 확실히 기억난다. 그들은 화려한 그래픽의 RPG게임을 구사했다.
12년 내내 학교에서 알려준 교과목만 공부하다가, 컴퓨터 학과에 들어와 고작 3개월만에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프로그램 개발도 재능의 영역임을 깨닫고 좌절한 순간이었다. (특히, ‘너 때문에 흥이 깨졌으니가 책임져’ 밈을 이용해서 디오니소스가 음표로 공격하는 게임에 개발에 대한 자신감은 심연 깊은 곳까지 무너져 내렸다)
공학수학, 물리, 법 등 다른 교양에서는 준수한 성적을 거뒀으나 유독 전공과목에서는 허덕였다.
그렇기에 개발에 더욱 흥미를 잃었던 것 같다.
더 나아가, 나는 전공으로 취업을 하지 않겠노라, 다른 길을 모색하겠노라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른 길로 방향을 틀고, 그 길로 열심히 뛰어갔다.
어느덧 컴퓨터를 멀리하고부터 7년 가량의 세월이 흘렀다.
반골기질이 있어서일까, 컴퓨터에서 멀어지니 컴퓨터를 가까이 하게 된다.
학부생 시절 이해가 안 되었던 것들이 삶의 노하우가 쌓여 이제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늘 내게 말씀하셨던 것이 빛바랜 기억 저 편에서 선명하게 가까이 들려온다.
‘아들아, 지금까지의 너를 보면 처음에는 남들보다 더디지만 나중에 보면 늘 더 훌륭히 성장해있더구나. 좌절하지 말고 성실히 앞으로 나아가렴. 너 자신을 믿고 꾸준히 韜光養晦(도광양회)하거라.’
도광양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
1980년대 중국 주석인 덩샤오핑이 국력을 키우기 위해 펼쳤던 대외정책 모토로 흔히 알려진 삼국지 고사성어이다.
이제 조용히 실력을 갈고 닦아야 할 때이다.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인내하며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아 세상에 나를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나는 돌아가는 중이다,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Go Back) 중이기도 하고,
뒤늦게 먼 길을 돌아가는(Go Around) 중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 말했다.
시간은 모두에게 상대적이라고.
그동안은 내 시간은 남들과 느리게 흘렀을 지 모르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내 시간이 빠르게 흐르리라 믿는다.
언젠가 나도 훌륭히 성공해서 먼 길을 돌아 좌절한 사람에게 ‘도광양회’라는 말을 전해주며 그 고사성어의 산 증인으로 보여주고 싶다.
이 블로그는 나의 결심에 작은 부분이다.
내 강점인 ‘꾸준함’이 이 블로그에도 묻어나왔으면 좋겠다.
성장하는 나를 지켜보는 쏠쏠한 재미를 여러분께 선사한다.
그럼,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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